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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그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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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효진거사 작성일12-11-20 15:16 조회14,1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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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려서 송광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의 열정을 시기하는듯 차가운 빗줄기와 세찬 바람은

그칠줄 몰랐지만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달렸습니다.

S라인을 뽐내는 향나무숲을 지나 송광사 깊숙히 들어갑니다.

맑디 맑은 기운이 감돌며 우리를 맞이하는 전각들을 보며

세상에서 제일 깨끗함을 느낍니다.

아직 잎새 떨구기를 거부하던 단풍나무숲에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 생생한 광경은 송광사 기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합니다.

살아있다는 느낌,

그것이 송광사를 마주한 순간의 소감입니다.

송광사를 뒤로 하고 또 달렸습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선암사입니다.

은은히 살아 숨쉬는 잿속 잔불처럼 고요함에 내모습 숨기듯

한없는 생명력을 품고 있었습니다.

송광사가 현재의 깨어있음이라면 선암사는 과거 꾸준한

정진의 결과을 품고 있는 전생이란 느낌입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그리 절절하진 않더군요.

반면 제 안사람은 송광사 지장전에서도 그 위엄을 감당키 어려울

정도의 흥분을 가누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전 약간 허전하고 부족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성지순례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날 저녁, 친구들과 한 잔

하려고 만났습니다.

두 친구는 만나자마자 동해로 회먹으러 가자더군요.

얼떨결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낙산해수욕장의 썰렁한 바닷가에서 중년의 세남자는 

알코올이 물인양 자연스런 목넘김을 서로 부추겼고,  

이윽고 파김치가 된 몸뚱아리를 콘도 침대에 던져 놓았습니다.

술기운과 엄청난 피곤이 몰려왔지만, 온 김에 낙산사가

어찌 변했나 보고 싶어져서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2005년 고성 산불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마주했던 낙산사.

아직 그 여파의 흔적이 남아있긴해도 많은 보수로 깔끔해졌습니다.

보타전 참배에 이어 해수관음상앞으로 올랐습니다.

첫눈 내린 설악산의 하얀 눈풍경이 병풍되어 솟구쳤는데

그 앞으로 눈부신 붉은 해가 떠 오릅니다.

우렁찬 바도소리와 기러기 울음소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범종의

울림앞에 고요함의 진동이 느껴지듯이 그런 무념의 찰라에

해수관음상의 머리 위, 바쁜 날개짓을 하는 기러기떼 사이로

붉디 붉은 해가 번집니다.

아~ 이럴수가.

단순한 감탄이 아닌 억겁의 세월 동안 묵혀있던 한 숨,
 
화엄의 세상이 내 앞에서 펼쳐지다니 믿어지지 않는 경험입니다. 

이번 성지순례의 끝이 보였습니다.

해수관음상의 미소 속에서 그간의 일정이 마무리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날 시월 초파일 아침 기도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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