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의 여행 - 7(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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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장 작성일12-03-14 17:26 조회7,774회 댓글0건본문
삼계의 여행(7)
육도 11천의 세 번 째 하늘이 축생(畜生)입니다. 흔히 축생을 짐승들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육도의 의미는 그 곳에 사는 존재의 생물학적 구분이 아닙니다. 그 마음의 레벨에 따른 구분입니다. 축생계라는 것은 마음이 어리석은 자들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분노심으로 남을 괴롭히지도 않고, 이기적인 탐욕으로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지만 어리석음 때문에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름이 늘 “몰라서 짓는 죄”라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런 자들을 질리도록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이 태어나는 곳이 축생의 세계입니다. 축생계에는 불과 얼음, 그리고 굶주림같은 끔찍하고 혹독한 형벌은 없지만 그 생애에 낙이 없고 고단함뿐입니다. 다고희락(多苦希樂)한 생애가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손이 칼퀴가 되고 등껍질이 거북이처럼 부풀어터지도록 평생 뙤약볕 아래서 땅을 갈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농노들이 그러했고, 목화밭의 흑인노예들이 그리 살았고, 개화기 이전의 우리 조상들도 대부분 짐승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축생이었습니다. 이런 삶을 받는 것도 다 자기가 결정한 것입니다. 자기가 짓는 업대로 나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의 댓가입니다.
부처님이 설명하신 육도 11천의 세계는 철학적 프레임을 가진 정교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지 2천5백년이 지났고, 수많은 스님, 조사, 학자들이 있었는데도 부처님이 설명하신 세계의 프레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3계의 구조론은 불교이론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기초이론인데도 마치 설화처럼 이야기될 뿐이고,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시중의 그 어떤 불교이론서를 봐도 3계의 설명은 두루뭉실, 마치 노자 도덕경의 해설집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뒤가 안 맞고 난센스로 가득합니다. 모모하는 대사님들의 설법을 들어봐도 마찬가집니다.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먹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만들뿐입니다.
지옥과 아귀와 축생은 모두 사람의 마음이 만드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떤 마음이 만든다는 소리일까요? 그게 바로 탐진치(貪瞋痴)의 3독(三毒)입니다. 탐(貪)은 탐욕(貪慾)의 줄임말입니다. 자기가 즐거운 것들을 구해서 가지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진(瞋)은 진에(瞋恚)의 줄임말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안 맞는 것에 대하여 반발하고 미워하여 화를 내는 마음입니다. 치(痴)는 우치(愚癡)의 줄임말인데 옳고 그름을 분간치 못하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이 3독(三毒)은 3혹(三惑)이라고도 하는데, 불법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되는 세 가지 마음으로서 인간이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이 이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3독을 지우고 씻어내는 공부를 불교에서는 3학(三學)이라고 합니다. 바로 계(戒)와 정(定) 그리고 혜(慧)가 그것입니다. 탐욕을 지우는 공부를 계(戒)라 하고, 진을 가라앉히는 공부를 정(定)이라 하고 치(痴)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부를 혜(慧)라고 합니다. 이 계정혜의 삼학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인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인간인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를 일컬어 인간세계라고 합니다.
아직 인간이지 않은, 인간이 되려면 한참 먼 존재들이 탐진치라는 세 가지 마음으로 만들어 내는 세 가지 세계가 바로 지옥과 아귀와 축생인 것이지요. 탐욕이 만드는 세상이 아귀요, 진에가 만드는 세계가 지옥이요. 우치가 만드는 하늘이 축생입니다.
이 프레임이 눈에 들어와야 합니다. 세 가지 지옥과 세 가지 마음은 일대일로 매칭이 됩니다. 이 다음에 열리는 세상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런데 육도에서 보면 지옥, 아귀, 축생과 인간의 사이에 수라라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3독의 세계 다음에는 인간세계가 맞습니다. 그런데 왜 수라가 하나 더 끼여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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