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의 여행 - 14(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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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장 작성일12-04-15 20:15 조회8,294회 댓글0건본문
삼계의 여행(14)
그렇다면 인간사주(人間四州)에 언제부터 왜 인간이 살게 됐을까요? 인간의 탄생에 대한 불교의 시각은 어떠한지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기독교는 조물주가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 인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최초의 인간은 남자였고 그 이름은 아담입니다. 아담의 배필인 여자는 아담의 갈빗대를 훔쳐서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이브(또는 하와)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절도범은 하나님이고, 그 장물의 이름은 갈빗대입니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동양의 인간은 최초의 남녀가 나반과 아만이었다고 합니다. 현대의 인류학자들이 찾으려고 하는 인류의 첫 어머니는 그 이름이 루시입니다. 루시가 살았던 추정연대는 3만 년 전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3백만 년 전으로 점점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잘하면 우리의 첫 어머니는 천만 년 전에 이 지구상에서 풀과 과일을 뜯어 그 아들을 먹이고 있었다는 학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루시의 증거인 인류의 화석은 점점 더 연대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해골이 하나 발견될 때마다 백만 년씩 뜁니다.
현대과학은 인류의 진화를 루시의 행방이 말해주는 것처럼 원숭이와 비슷한 동물에서 점점 고등한 인간으로 발전해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부경과 불경은 전혀 반대의 시각으로 인간의 출현을 봅니다. 천부경에는 놀라운 한마디가 있습니다. “일적십거(一積十拒) 무궤화삼(無櫃化三)”이 그것입니다. “하늘의 기운이 쌓이고 쌓인즉 그것을 담을 상자가 없어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을 하늘기운의 화생(化生)이라고 본 것입니다.
부처님이 육도 윤회의 주체라고 말씀하신 유정은 사생(四生)으로 태어납니다. 마지막 화생(火生)은 화생(化生)이기도 합니다. 기운이 변화해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에서 생명을 발현시키는 기운은 화기와 수기입니다. 이 가운데서 수기가 일으키는 생명은 습생이라고 설명이 되었고, 화기가 일으키는 생명이 바로 화생(化生)입니다. 화생(化生)이라 말할 때는 미생물만이 아니라 형체 없는 생명까지를 아우릅니다. 형체 없는 생물이 있느냐고 하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전자현미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전하는 모든 생명체를 눈으로 확인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과연 인간은 “모든 생명체”를 다 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인간이 눈으로 보지 못한 생명체들이 득시글거립니다. 바이러스보다 더 작고 더 불완전한 중간 전물질과 생명 사이에 존재하는 화생은 인간의 눈에 포착되지 않습니다. 화생의 존재들은 이 순간에도 물질과 생명 사이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온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그것들이 생명계로 넘어와서 우리 눈에 보이게 되고 또 생명계로부터 화생의 존재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육도 윤회를 설명하신 부처님은 이런 존재까지도 알아차리신 것입니다.
삼매의 경지에서 눈뜬 천안으로 이런 바이러스보다 작은 화생들과 신장이 수십 유순에 달하는 생명계의 존재들을 전부 보신 것입니다(1유순은 약 16km).
우리 인간들은 21세기의 지성과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도 바이러스보다 더 작은 생명체의 존재나 키가 수십킬로가 넘는 거대한 생명체의 존재를 상상해내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법하신 육도의 세계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심형래는 그런 상상을 합니다).
부처님이 보신 우주에는 바이러스보다 작은 생명체들이 충만하였고, 저 우주에는 신장이 수백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생명체도 있었습니다(그런 건 없다고 우겨 보실랍니까?). 아직 인간은 물질을 구성하는 궁극의 입자를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인간의 탄생에 대한 철학적 시각은 천부경과 불경이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인류의 궤적이 원시로부터 고등생명체로의 발전이 아니라 하늘의 청정한 기운체에서 탁하고 타락한 생명체로 퇴보해왔다고 보는 시각이 그것입니다.
최초의 인간에 대한 불교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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