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로 살다가 무소유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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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사 작성일11-05-06 11:24 조회8,061회 댓글0건본문
각박한 세상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위안과 휴식
한국의 사찰·자연 담은 수려한 영상도 볼거리
한국의 사찰·자연 담은 수려한 영상도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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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먹어 가는데 벌어 놓은 돈은 없고 뭔가 딱히 이루어 놓은 것도 없어 늘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10년 전쯤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해 볼 용기나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상이 초조한 데다 앞으로 닥쳐올 노후가 걱정되는가. 그렇다면 보라! 이 영화를. ‘법정스님의 의자’는 물질적 풍요와 결과만을 보는 각박한 세상에서 삶에 치받친 이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휴식을 주는 영화다.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다시 내일을 굳건히 살아갈 용기와 의지를 불어넣어 준다. 영화는 길지 않은 75분짜리 다큐멘터리이지만 진정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천화’는 전설적 고승의 죽음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기진맥진할 때까지 걷다 죽는 방법이다. 행여 기운이 남으면 나뭇잎 긁어 덮고 죽는 것이다. 법정은 아마도 ‘천화’를 바랐을 것이다.
‘내 이름으로 출간된 모든 출판물은 더 이상 발간하지 말라’는 유언은 ‘세상에 진 말 빚’, 그 빚을 거두어 가겠다는 뜻이다. 유언에 따라 일체의 장례식도 추도행사도 없었다. 평소 그의 신조처럼 ‘중답게 살다가 중답게 떠난 것’이다. 우리에게 다 주고 간 것이다.
법정의 스승 효봉 스님은 한 번 참선에 들면 엉덩이가 짓무를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 해서 ‘절구통 참선’으로 불렸다. 효봉은 68세에 더 깊은 암자를 찾아 지리산 쌍계사로 수행차 들어갈 때 “어허, 이 놈아 네 얼굴이 중 얼굴이다”라며 입산 이듬해 막 계를 받은 사미승 법정만을 데리고 갔다.
“중이 하나만 있으면 됐지 왜 두 개가 필요한가”라는 스승 효봉의 말에서 법정은 청빈의 도를 깨우치며 ‘무소유’ 정신의 토대를 닦았다.
“빈 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 전체를 누릴 수 있습니다. 텅빈 상태에서 충만감을 느끼게 돼요. 무엇인가 방에 있으면 그것에 매이게 됩니다. 하나를 가지면 그 하나에 얽매이게 되는 거죠. ‘집착’입니다.”
법정이 소유했던 것이라곤 읽다가 놓아 둔 몇 권의 책과 한 묶음의 차, 소형 라디오, 몇 평의 채마밭이 전부다. ‘67.12.3’. 법정 스님이 평생 쓰던 양은 대야에 찍힌 구입 일자다.
“(오대산) 이런 곳에 오면 사람 말이 시시해져 버립니다. 바람소리나 풀밭의 공기만으로도 충만되니까요.”
당당하고 자유로운 경지에 오른 말년의 그가 남긴 말이다.
‘한 등불이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식이 만년의 어리석음을 쫓는다’는 말에 따라 법정은 불교의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 바꾸었다. 어려운 불교용어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글로 풀어냈다. 절에 갇혀 있던 불교사상을 사회에 널리 퍼뜨려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이다. 법정은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를 최초로 번역했으며, ‘대장경’을 발간하고 가장 방대한 ‘화엄경’은 정수만 모아 펴내기도 했다.
수필집 ‘무소유’는 유언에 따라 절판될 때까지 330만부가 판매됐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가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격찬했을 만큼 그의 글은 단순히 종교적인 믿음을 떠나 존재에 대한 성찰, 자연에 대한 사랑 등 인생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이러한 글들이 나오기까지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그가 본 것들, 깨달은 것들, 그리고 우리에게 못다한 이야기는 무엇인지를 조심스레 보여준다.
법정은 무소유를 통한 나눔의 삶을 살았다. ‘무소유’ 출판 후 처음 받은 인세를 봉투째 장준하의 유족에게 전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문현철교수(초당대학교)와의 인연도 그의 어려웠던 대학시절을 도운 법정의 나눔으로 이루어졌다. 광주에 있는 고전음악 감상실 ‘베토벤’은 법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창구였다. 그의 모든 인세는 이렇게 나눔의 의미로 쓰여졌다. 하지만 법정은 자신과 속세의 가족들에게는 매우 엄격했다.
보다 보면 목 메는 영화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눈물이 나면 목놓아 울어도 좋다. 씻긴 듯 정화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듯싶다.
‘배 속에는 밥이 적어야 하고, 입 안에는 말이 적어야 하며, 마음속에는 일이 적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이다’ ‘내가 다하지 못한 말은 새로 돋아난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 듣기 바랍니다’ 등 법정이 남긴 말과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결국 그 녹이 점점 쇠를 먹는다’(법구경),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무소유’, ‘면도날을 밟고 가기란 어려우니 구도하는 길은 이 같은 것이다’(우파니샤드) 등의 좋은 말들을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한국의 사찰과 자연을 담은 수려한 영상도 볼거리다. ‘아름다움에 대한 마음만은 끝까지 놓지 못했다’고 고백했던 법정의 말처럼 생전에 소중히 여기던 사찰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은 관객의 마음을 쉬어가게 한다. 임성구 감독은 법정의 가르침과 한국 자연의 미를 극대화해 표현했다. 법정이 기거하면서 ‘무소유’ 등을 집필했던 불일암과 스승 효봉과의 인연을 맺은 쌍계사의 모습은 정갈하게 묘사되었다.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 목을 축이고 떠나는 한 마리 작은 새, 활짝 핀 매화 한 송이 등 법정이 늘 아끼고 소중히 여겼던 자연과 생명을 마치 법정의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듯 영상에 담아냈다.
영화 속 의자는 법정이 불일암에 거주하던 시절 참나무 장작개비로 손수 만든 것이다. 일명 ‘빠삐용 의자’.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는 거야.”
법정이 ‘무소유’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의자가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진정한 나로 살고 있는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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