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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하루 법문 - 다함과 다함이 없는 법문(유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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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13 18:42 조회6,4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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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경  :  다함과 다함이 없는 법문(菩薩行品)

 

 

여래의 역할

세존께서 이르셨다.

아난다여, 그대가 말한 그대로이다.

  아난다여, 보살이 여래의 역할을 하는 불국토가 있다. 광명이 여래의 역할을 하는 불국토가 있다. 보리수가 여래의 역할을 하는  불국토가 있다. 여래의 상호를 보는 일이 여래의 역할을 하는 불국토가 있다. 의복이 여래의 역할을 하는 불국토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곳에서는 음식이 여래의 역할을 하며 더러는 강이, 숲터가, 궁전이, 누각이 여래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난다여, 술법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여래의 역할을 하는 그러한 불국토가 있다. 아난다여, 허공이 여래의 역할을 하는 그러한 불국토가 있다. 마찬가지로 커다란 공간이 여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바로 이 같은 일을 통해서 중생은 바르게 인도되는 것이다.

  아난다여, 마찬가지로 꿈이나 그림자나 물 속의 달이나 메아리, 허깨비, 아지랑이의 비유 및 문자와 어원 등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여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에는 말로 드래내서 여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어느 경우에는  말로써 이야기하지 않고 설하지 않고 나타내 보이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여래와 같은 역할을 하여 청정해진 불국토도 있다.

  아난다여, 불타세존의 행주좌와(行住坐臥) 및 일용품과 도구 등이 정작 여래와 같은 역할ㅇ르 하였으며, 사람들을 인도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아가 제불세존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네 가지 마(魔)와 84천 번뇌의 문이라는 것조차 여래와 같은 역할을 보이도록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다.

 

   아난다여,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의 특성을 갖춘 문에 들어간다라는 이름의 법문인 것이다. 이 법문에 이미 들어선 보살은 설령 위대한 덕으로 꾸며져 있지 않은 오렴된 불국토를 만나더라도 전혀 의기소침해지는 일이 없다.

반대로 설령 모든 위대한 덕으로 꾸며져 있는 청정한 불국토를 만나더라도 기뻐하거나 뽐내는 일 없이 오직 여래에 대한 존경심만 더해 갈 뿐이다.

  모든 존재의 평등성을 깨달은 제불세존이 사람들의 근기를 성숙시키기 위해 이와 같이 온갖 불국토를 나타내 보이시는 것은 여간 놀아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난다여, 이들 불국토의 모습은 비록 서로 다르지만 그 위를 덮고 있는 하늘이나 허공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여래들의 모습은 비록 서로 다르지만 막힘이 없는 여래의 앎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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