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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기도(예금선 제93호 지상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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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금선사 작성일09-10-26 18:38 조회6,4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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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기도

                                                 법안 / 주지스님

 

  며칠 전에 내린 비로 계곡의 물소리가 한여름에 느끼던 소리와 사뭇 다른 게 가을 기운이 완연합니다. 들녘의 농작물에 이슬이 맺는다는 백로가 지나 며칠 후면 추분입니다.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했던가요. 이렇게 산사의 가을은 깊어만 갑니다. 늘상 이 계절이 되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곤 합니다. 부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자신이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음에 스스로에게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난여름 우리 사회가 겪었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없었던 미안함에 부처님께 참회합니다. 살아오면서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아픔이나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옛 조사들이 입적 할 때 남기신 임종게에는 “금생에 태어나 나와 인연된 존재들에게 은혜를 입은 게 헤아릴 수 없거늘 그 은혜에 보답은 고사하고 업을 지은 게 수미산을 덮는다” 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용서는 자비스런 마음의 용기 있는 표현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주었던 상처나 아픔에 대해서 참회할 수 있음은 크나큰 용기입니다.

   제가 관계하고 있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이 있습니다. 지난 권위주의 역사시기에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기관입니다. 그 암울한 시기에 세상을 향한 정의로운 행위, 또는 푸념의 말 한마디로 인해 운명이 바뀐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경찰, 안기부, 기무사에 끌려가 죽음에 이르는 온갖 고문과 모욕을 당하고 십 수 년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심지어는 죽음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말도 못하고 살아온 가족들입니다. 그들의 가족과 당사자들의 한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피해자들에게 갖은 고문과 못된 짓을 한 사람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불교의 인과의 이치를 이해한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삶과 죽음이 호흡지간 찰나지간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도 저런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마음이 내재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봅니다.

  불교를 비움의 종교라고 합니다. 자신을 비운다는 것은 살아온 과거를 성찰하는 것입니다. 비움의 출발은 자신의 삶의 현상을 여실히 알아차리고 느끼는 일입니다. 비울 때에 가벼워지고 맑아집니다. 비울 때라야 자유와 평화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벗들에게 나에게 보내주신 그대들의 선연에 감사드리며 더불어 지난 시기에 내가 그대들에게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그대들과 나와 맺어진 나쁜 인연이 여기서 끝나게 해주소서. 나에게 고통을 준 상대에 대한 미움과 원망스런 마음에 대해 부처님께 발원합니다. 나에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로인해 나와의 인연이 그치게 하소서. 더 이상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게 하소서. 쪽빛 가을하늘이 우리를 부처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가을밤을 더욱 깊고 정겹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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