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의 열반소식 듣고 새삼 텅빈마음 갖습니다” 법안스님 삼각산 금선사 주지
세상 이토록 허망한데 업연 짓고 살아갈까
일전에 가까운 도반 은사스님이 입적 했다는 소식을 듣고 팔공산 은해사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영결식을 마치고 다비장에 도착해 거화(관에 불을 붙이는 의식)를 해 훨훨 타는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세월이 지난 뒤에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숙연해 졌습니다. 일찍 가신 아쉬움 때문이였을까. 그래서인지 목이 메여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는 도반의 모습이 돌아서는 길목 내내 사무쳐 왔습니다. 저토록 한줌의 재가 되고 마는 것을. 풍진 세상에 태어나 수행자의 모습으로 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할까, 허허롭다고 할까. 그 여운이 며칠을 갔습니다.
누구나 죽고 난 다음에는 관대해 진다고 합니다. 생전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섭섭한 사람일지라도 죽고 난 뒤에는 용서와 이해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제 다시는 볼 수없는 명부의 세계로 떠나갔다는 생각이 들기에 그럴까요. 아니면 죽은 자의 모습이 안되게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죽은 자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그것을 나의 문제로 생각을 돌리기 때문은 아닐까요. 세상이 저토록 허망할 뿐인데 왜이리 나는 분주하게 업연을 짓고 살아갈까 하고 자책함은 아닐런지요. 정녕 인간 본원자리로 돌아가 자기를 비춰 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매년 칠월 백중(우란분절)이 다가오면 자신의 업연에 대해서 돌아보곤 합니다. “대중이여, 나는 이제 참회를 행하노니, 대중들은 내 행위와 내 언어에서 무엇인가 비난할 만한 것을 보고 듣고 또 의심하는 생각을 내지는 않았는지? 만약 그런 생각을 냈다면 나를 부디 가엾이 여겨 지적해주오. 죄를 알면 마땅히 그 죄를 뉘우치리라” (잡아함경)이 경구는 부처님께서 당신 자신의 허물을 대중에게 묻는 장면입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는 여름 안거가 끝나는 마지막 날인 칠월 백중 해제날은 자자(自恣)를 행하는 날입니다.
자자(대중이 서로 모여 그동안 지은 죄를 見, 聞, 疑 3事를 가지고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는 방법)는 장로(長老 제일 웃어른을 가리킴)부터 가장 어린 사미까지 차례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때 부처님께서 이렇게 세 번을 외었던 것입니다. 엄숙한 침묵이 장내를 한참동안 뒤덮습니다. 침묵은 청정함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갑자기 자리에서 한 비구가 일어나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누구도 세존의 행위와 말씀에서 지적할 만한 점을 발견한 자는 없사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지혜제일의 존자 사리불이였습니다. 대중 앞에 자신의 허물을 물어 무릎 꿇고 합장 고백하시는 부처님, 이 얼마나 성스럽고 자비스러운 모습입니까. 이러한 부처님의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저 깊은 심연에서 울리는 고동소리를 듣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대중에게 물을 수 있는 용기, 대중의 지적을 자기 공부로 잇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맑히는 샘물입니다. 부처님전에 무릎 꿇고 간절히 간절히 합장을 합니다. 나 자신의 업연을 생각해 봅니다. 왠지 모르게 끝도 모를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텅 빈 가슴으로 부처님을 마주합니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충만이 다른 사람이 볼까 부끄러워 합니다. 망자의 허망한 모습을 보고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듯이 깨어 있어서 자신을 들여다 보는 수행이 바로 참회입니다. |